민희진과 크리스탈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아이돌 세계관 분석
아이돌 세계관이라는 말이 흔해진 지금, 그 개념의 초석을 다졌던 사람 중 하나는 단연 민희진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가장 상징적인 얼굴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크리스탈이다. 민희진과 크리스탈. 이 둘은 한때, 아니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서로의 세계를 완성시킨 존재였다. ‘민희진과 크리스탈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아이돌 세계관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도,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디렉터와 아이돌을 넘어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민희진은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비주얼 디렉터로 활동하며,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대중가요의 연장선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돌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했고, 그 브랜드를 입히기 위한 서사를 구축했다. 무대 위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티저 이미지, 앨범 디자인, 뮤직비디오, 멤버들의 표정 하나까지도 민희진은 기획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감각을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존재가 등장했다. 정수정, 크리스탈이었다.
크리스탈은 말수가 적고, 웃음도 많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도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다소 차가운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민희진은 그런 크리스탈의 비주얼과 무드를 자신의 세계관에 녹여냈다. 그는 크리스탈을 ‘얼음공주’로 설정하고, 그 차가움을 세련됨으로 승화시켰다. f(x)의 ‘Red Light’와 ‘4 Walls’는 그 정점이다. 이 시기 크리스탈은 단순한 걸그룹 멤버가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캐릭터였고, 그를 둘러싼 연출은 패션화보나 독립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정수정이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관계는 더 이상 단순하게 회상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민희진은 SM을 떠났고, 크리스탈 역시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민희진의 사적인 대화가 일부 공개되며 팬들 사이에서 큰 파장이 일었다. 그 내용 속에서 민희진은 크리스탈을 ‘자신의 뮤즈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f(x) 시절 그녀가 만들어낸 수많은 시각적 아이콘들이, 단순히 브랜드 전략의 일부였을 뿐이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렇게도 환상적으로 보였던 둘의 조합이 실은 일방적인 투영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흐르며 감정이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민희진이 크리스탈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세계관인 뉴진스를 강조하고 싶었던 거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크리스탈이 민희진이 바라는 이상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실망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봤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크리스탈은 민희진이 만든 세계관에서 가장 분명하게 ‘살아 움직인’ 존재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민희진은 이후 뉴진스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냈다. 그러나 뉴진스가 구현하는 ‘청초함’이나 ‘무심한 듯 섬세한 감성’ 역시, 어떤 면에서는 크리스탈을 통해 미리 실험된 세계였다. 정수정은 지금의 뉴진스를 만든 원형이자, 가장 성공적인 프로토타입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민희진은 크리스탈에게서 본인의 취향을 본능적으로 투사했다면, 뉴진스에게는 그것을 전략적으로 이식했다는 점이다. 감성의 산물이었던 과거에서, 기획의 산물로 넘어온 현재까지. 크리스탈은 여전히 그 경계에 서 있는 상징 같은 존재다.
돌이켜보면, 민희진과 크리스탈의 조합은 아이돌 세계관의 가장 결정적인 시점이었다. 그들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K-POP이 ‘무드’와 ‘미학’을 언어처럼 말하는 시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아이돌 이미지를 넘어, 정제된 감각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크리스탈의 이미지 뒤엔 민희진의 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민희진의 모든 작업들 속에는, 여전히 정수정이라는 이름이 어렴풋이 배어 있다.
댓글